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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진해탐방-돌처럼 단단한 민심으로 지켜온 고장 '석동'진해구 석동 안민터널, 대단지 아파트 건설로 급격한 도시화
   
▲ 안민고개

석동은 진해구 중부지구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안민터널을 지나면 마주하게 되는 첫 동네로 진해구의 첫인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민고개도 행정구역상 석동에 일부 포함되는데, 탁 트인 진해만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소다.

석동이라는 동명은 마을의 고유명인 돌리에서 유래됐다.

돌리가 석리로 표기되다 옛 진해가 시로 승격되면서 석동이 됐다.

예로부터 돌이 많았던 지역이고 삼한·삼국시대 매장 유적이 발굴되는 등 마을이 돌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는 말도 전해 내려온다.

그래서일까. 석동을 지켜온 민심 역시 돌처럼 다부지다.

석동에 가장 먼저 정착한 조상은 배윤 장군으로 그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동한 인물이라고 한다.

1912년 일제강점기 때는 석동 뒷산을 벌목하고 과수원을 만들어버린 일본인에 항거해 경남 최초로 항일 농민 운동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1985년 상주인구 조사 때 1635명이었던 인구는 30여년 만에 1만 7617명으로 늘었다.

이 같은 석동의 급격한 도시화는 1999년 안민터널 개통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창원시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로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줄줄이 건설됐고 석동이 진해의 주요 상권으로 급부상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첫 대형마트가 생겼고 장복초등학교, 석동초·중학교도 줄줄이 개교했다.

급격한 도시화에는 진통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석동은 그 과정도 달랐다.

토착민과 아파트 입주민들이 2007년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장복산 등산로를 정비하며 소통의 물꼬를 텄다.

지금까지도 장복산, 석동근린공원은 주민 화합의 공간이 되고 있다.

MBC 프로그램 ‘느낌표’의 독서 운동을 계기로 건립된 어린이 전용 ‘기적의 도서관’은 아이들의 사랑방이다.

지난해 11월에는 공영주차빌딩 준공으로 도심 주차난이 다소 해소됐고 현재 공사 중인 제2안민터널도 개통되면 석동의 더 큰 발전이 기대된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했던가. 석동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김혜인 기자  hcs@k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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