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0일 내 생애 처음으로 마라톤이라는 걸 도전하게 되었다. 그것도 42.195km full course.
사실 나는 거리, 숫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래서 42.195km가 도대체 어느 정도나 되는 거리인지 잘 모른 채로 단지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신청이라는 버튼을 눌렀다.

“아빠 저 내일 마라톤 풀코스 뛰어요 !”

아빠는 내가 장난이라도 치는 줄 알고 코웃음만 치셨다.

“아빠 내일 진짜 나가요! 내일 완주해서 올게요!”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으시기에 며칠 전에 배달되어 온 나의 마라톤 번호표를 보여드렸다.
아빠는 그제야 이게 장난이 아니었다는 걸 믿으셨다.
번호표를 보시고 내뱉은 첫 마디

“포기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딸이 처음으로 힘든 도전을 해보겠다는데 포기해라니……. 정말 서운했다.
하지만 우리 아빠가 그렇게 말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나의 초등학교 3학년,
유난히도 달리기를 못했던 나를 위해 아빠는 운동회 일주일 전부터 달리기 연습을 같이 해주셨다.
그리고 운동회 날
무뚝뚝하시던 아빠는 딸을 응원하기 위해 운동회에 와주셨다.
하지만, 달리기 꽝이 어디 가겠는가.
역시나 난 6명 중에 6등 꼴찌로 들어왔다.
그때의 실망한 아빠의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마라톤 당일 아침,
아빠는 다치니까 완주할 생각 말고 조금만 뛰다 다시 돌아와라.
5km 아니, 3km만 뛰면 아빠가 맛있는 거 사줄게.
3km? 내 나이 23살인데 고작 3km라도 ?
갑자기 가슴 저 밑에서부터 뭔지 모를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아빠 나 꼭 완주할꺼에요 .”

솔직히 자신 없었다. 그냥 보여주고 싶었다. 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완주하면 아빠가 네가 원하는거 다 들어주마.”

아빠는 가능성 0% 라는 듯이 자신만만하셨다 .
총소리와 함께 나는 출발을 했다.
나는 꼭 3km에서 아빠께 전화를 하기 위해 핸드폰을 손에 쥐고 뛰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금방 1km 표지판을 지나쳤다.
3km 밖에 안 왔지만 숨이 찼다.
숨을 고르고 3km 지점에서 나는 아빠께 전화를 했다.

“아빠 나 3km에요 이제 계속 뛸 거니까 긴장하세요.”

나는 꼭 완주할거야. 라는 생각만 가지고 정말 온 힘을 다해서 뛰고 걷고 눕기도 했다.
고비 38km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이번 마라톤에서도 역시 꼴찌였다.
내 뒤에는 구급차밖에 없었다.

“포기하실 건가요?”

발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포기하기 싫었다.

“아니요 포기 안 해요 . 먼저 가세요 .”

구급차를 보내고 나는 뛰었다. 안보일 것 같던 결승점이 내 눈앞에 보였다. 나는 이번에도 꼴찌지만 그래도 무사히 완주에 성공했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슬프지 않은데 눈물이 나왔다. 기뻐서 눈물이 난 적은 처음이었다.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회사에 계신 아빠께 전화를 했다.

“아빠, 아빠 딸 완주했어요.”

아빠는 당황하셨고, 나만큼이나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셨다.
그날, 아빠는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니셨다. 꼴찌로 들어왔다는 말만 쏙 뺀 채로.

“허허허 우리 딸 이 녀석이 글쎄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네!”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왔을 때에도, 성적이 올랐을 때도 항상 무뚝뚝하시던 아빠였다. 처음본다. 이렇게 좋아하시는 아빠.

아빠, 이정도면 나 대형 사고친거 맞죠 ?

아빠 ....... 나 사고 쳤어요.

그러니까 이제 원하는거 다 들어주세요~~ 준비되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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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향미  master@cw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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