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어머니는 5남 1녀의 장녀로 거제도 황포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오빠와 제가 성적 때문에 속을 썩일 때 마다 늘 입에 붙여놓는 ‘공부 잘하던 엄마 시리즈’는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야, 나 때는 여자가 어디 공부를 한다고 책가방을 들이밀어~뭐, 중학교? 중.학.교오오? 여자가 공부를 하면 소는 누가 키워?!”

어머니 말씀으로는 황포 동네에서 중학교에 간 여자애들은 저희 어머니를 포함해서 두 세명에 불과했고 더구나 고등학교까지 입학했던 경우는 더더욱 없었다네요. 그 시대에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시험을 쳐야만 갈 수 있었고 가난한데다가 또 밑에 남동생들이 줄줄이 있었던 저희 어머니로서 공부를 한다하니 외할아버지, 할머니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구요. 듣자하니 마을에서도 꽤 알아주는 똑똑이에 모범생이셨던 어머니는 그렇게 공부가 하고 싶으셨답니다.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재밌고 쉬웠다나 뭐라나.

그래서 본격적으로 외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떼를 쓰게 되었답니다. 말로 졸라보기도 하고 밥을 굶어보기도 하고 죽겠다고 협박도 해봤는데도 안 되더랍니다. 담임선생님께서도 외할아버지, 할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먼 길을 매일같이 걸어오시기 까지 하셨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강하셨다는 저희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러 갈까봐 화장실 가는 것도 감시하고, 황포 앞바다에서 배라도 탈까봐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셨다네요.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작전을 바꾸고 ‘대 일탈’을 감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셨던 어머니는 집을 몰래 나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래서 외할머니에게는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속이셨답니다. 그리고 입학시험 하루 전, 속에는 교복을 갖춰 입고 그 위에 할머니의 몸빼바지와 코트를 걸쳐 입은 뒤 동네 친구들과 밤낚시라도 할 것처럼 집을 나왔답니다.

공공칠 작전을 방불케 하는 삼엄한 외할머니의 레이저 경비를 뚫기 위해 어머니는 장목까지 걸어가셨답니다. 장목에 도착해서야 위장복을 벗고 미리 담임 선생님과 약속했던 대로, 선생님 댁으로 가서 하룻밤을 지냈답니다.

“그때는 그렇게 겁이 많았어도 귀신이고 뭐고 나타나면 ‘5번 척추 6번으로 만들어버릴 기세’ 였지. 오로지 시험쳐야 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드디어 내일의 태양이 뜨고, 그 시각 황포 집에서는 딸내미가 없어졌다고 난리난리가 났었답니다. 이게 죽는다카더만 진짜 인당수에 몸이라도 빠뜨렸나 싶어 황포 앞바다를 샅샅이 찾아보고 방에 흘려놓은 농약이나 쥐약이라도 있는지 뒤지다가 교복이 없는 걸 발견하시고 할머니도 마음을 비웠다고 하시더랍니다.

선생님 댁에서 아침까지 든든히 얻어먹은 저희 어머니, 끝내 장목에서 배를 타고 마산에 있는 고등학교에 시험을 치러 가셨답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세상에 합격했는데 어느 부모가 안 보내 주겠냐고. 배째라 심보로 갔다왔다 아니가.”

마산에는 친척도 한 명 안 살고, 집에서 멀뿐 아니라 방을 얻어줄 경제적 여력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 저지른 16세의 김희숙 여사. 두드리는 자에겐 열리는게 인생이라는 걸 그때 아셨다네요. 그 뒤로 다행히, 목사님 사촌 댁에서 함께 살수 있게 되었고 과외 아르바이트 자리도 얻게 돼서 무사히 고등학교 졸업까지 마치셨답니다. 어머니,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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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아  master@cw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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