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로 말하자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재작년 여름, 엄청난 무더위로 땀을 쫙 빼던 8월이었다.

넉넉치 않은 살림살이에 돌도 안된 갓난아기를 돌봐야 하는 나는 더위를 먹은 것마냥 매일 늘어져있기 일쑤였다. 그러다 기저귀값을 벌어보고자 생활정보지를 뒤적이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찰나에 단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물색하던 중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전단지 배포는 단시간에 할수 있고 일이 끝나면 돈을 바로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아무래도 발품을 많이 팔아야 되니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갓난아기를 마땅히 맡길 곳이 없으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에 아기를 업고 전단지를 배포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작 1~2만원을 벌려고 아기를 돈을 주고 맡기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일! 할수 없이 친정어머니께 도움을 요청해 며칠만 아기를 봐달라고 한채 오전10시부터 오후4시까지 6시간을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첫날, 전단지를 넣은 가방을 메고 단독주택 우편함에 한 장씩 끼우다가 전단지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여 근처에 있는 아파트단지로 무작정 향했다.

막상 도착해보니 내가 간 아파트는 신축아파트여서 비밀번호 없이는 들어갈 수 없게 되어있었다. 깨끗하게 단장된 아파트 공원 벤취에 앉아 출입구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몇 명의 아이들이 출입구 앞에서 벨을 누르고 잠시뒤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틈에 잽싸게 끼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1층부터 15층까지 미친 듯이 현관문앞에 전단지를 붙였다. 그리고 다시 15층에서 1층까지는 엘리베이트를 타고 내려갔다. 엘리베이트를 타고 내려가면서도 신축아파트에 살아본적 없는 나는 비밀번호도 모르는데 어떻게 나갈지 걱정했다.

‘다른 사람이 외출할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나갈까, 아니면 경비실에 연락해야되나, 그러다가 도둑으로 오인받으면 어떡하지?’ 오만가지 걱정을 다했지만 잠시뒤 그 상상력은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출입문을 나갈때는 자동으로 열리는 것이었다.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는 일주일 정도 한후 그만두었지만 그 여운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라는 여운이랄까..

비밀번호 없이는 아파트 출입구마저 봉쇄되는 세상, 그 편리하고 편한 세상에서 나는 기저귀값을 벌고자 땀을 흘리며 발품을 팔던 내 모습이 한없이 위축되어지는 것을 느꼈다.
요
즘도 가끔 신축아파트를 지나다보면 재작년 여름 전단지 배포를 하면서 비밀번호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출입문을 떠올리면 가슴 한켠이 아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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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현  master@cw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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