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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함안의 역사를 품은 길을 거닐다대암 이태준 기념관 · 함안독립공원
   
▲ 하트조형물

[경남데일리 = 황민성 기자] 일제강점기에 몽골에서 인술을 베풀고 독립운동을 펼친 이태준 선생은 빛나는 업적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이다.

함안의 대암 이태준 기념관은 이러한 선생의 삶과 독립운동의 역사, 그가 우리 세대에 물려준 소중한 희생정신 등의 가치를 알리는 데에 중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념관 뒤편에 조성된 함안독립공원은 훌륭한 역사 교육의 장이자 코로나로 몸살을 앓은 가족단위의 관람객과 지역 주민에게 즐거운 나들이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이태준기념관 외부

◆ 입체적인 전시로 구성된 기념관

지난 11월 함안 군북면에 개관한 대암 이태준 기념관은 이태준선생의 독립운동 업적과 그의 남다른 희생정신으로 점철된 일생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지어졌다.

기념관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벽면에 기록된 이태준 선생의 연도별 발자취다.

함안 군북면 명관리 출생인 선생의 성장과정과 24살이 되는 1907년에 세브란스의학교에 입학해 독립운동을 펼친 일대기가 상세하게 펼쳐진다.

이 공간에는 큰 글씨 설명과 사진자료가 함께 곁들어져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쉽게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선생의 일생을 집중해서 알아가도록 전시 흐름에 편의성을 높였다.

이태준기념관 내부

기념관에서는 선생의 발자취를 터치스크린으로 구현했다.

함안에서 서울, 중국 난징, 몽골의 고륜 등 알고 싶은 경로를 선택해 화면에 손을 대면 상세내용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사진과 텍스트뿐만 아니라 독립신문, 당시 교재로 사용했던 의학서적, 영상 등 입체적인 전시로 구성됐다.

이태준 선생이 38세의 젊은 나이에 러시아의 백위파 부대에 안타까운 죽음을 당하기까지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좌측이태준기념관건물과 함안독립공원

◆ 아름다운 청년을 마주하다

기념관 한쪽에는 이태준 선생과 도산 안창호 선생이 주고받은 편지의 원문과 해석본도 화면으로 볼 수 있다.

“선생님이 옥에서 나오시어 병원에 계실 때에 청년 학우회에 입회하라고 열심히 권면하시며 회비 일 원을 주시면서…” 이태준 선생은 안창호의 권유로 비밀청년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하고 중국으로 망명한다.

특히 몽골로 이동 후 동의의국을 설립하고 의사로 번 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지원했다.

당시 몽골에서 유행하는 전염병을 퇴치하는데도 크게 기여해, 몽골 정부는 이태준 선생에게 국가 훈장을 수여했다.

몽골인들은 선생을 신의 하늘에서 내려온 여래불이라 칭송했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의학적인 기술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료했을 아름다운 청년의 진심이 그들에게도 전해졌으리라 짐작된다.

함안독립공원

◆ 생생한 역사체험, 함안독립공원

기념관이 위치한 곳은 옛 군북역사 터로 함안독립공원과 함께 있다.

군북면에 거주하는 한 어르신은 매일 운동 삼아 공원을 몇 바퀴 돈다고 말했다.

지역주민에게는 더 없이 좋은 휴식공간이다.

함안군은 이곳에 증기기관차를 설치해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아울러 올해 기념관 옆의 철도공단 시설 건물을 리모델링해 함안 독립운동사 기념관을 건립할 예정이다.

이 일대가 독립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구심점이 되어 많은 이들이 찾는 장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곳만 둘러봐도 독립운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산책로초입_함안독립공원

◆ 아름다운 산책길을 걷다보면

함안독립공원은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기 좋다.

핑크뮬리 주변의 하트 조형물 앞은 포토존으로도 인기다.

어린이 놀이터에는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방문한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곳곳에 평상과 의자가 마련돼 있어 코로나 시대에 가족과 함께 오붓한 나들이를 즐기기에도 좋다.

산책로에는 수국과 장미 등 다양한 꽃이 심어져 있다.

겨우내 웅크렸던 꽃이 피기 시작하는 계절에는 산책길이 더 아름답다.

옛 철길 자리에 조성된 산책로 초입에 들어서면 바람결 따라 대나무가 흔들린다.

이곳에서는 새소리도 크게 들린다.

잠시 멈춰 서서 귀를 기울여본다.

복잡한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한 자연의 소리에 마음이 환해진다.

이태준기념관 내부

◆ 10년간 이어온 함안과 몽골의 교류

함안군은 2011년부터 몽골 울란바토르시 항올구와 농업 연수, 청소년 홈스테이, 수박재배기술 전파, 시설 소방차 기증 등 활발한 교류를 해왔다.

지난 11월에는 몽골에서 항올구 구청장 등이 기념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이태준 선생을 두고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는 보편적 인류애를 실천하며 외국에서 국제친선을 도모했던 국제화의 선구”고 언급한 바 있다.

선생은 100여 년 전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국제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돼 함안과 몽골의 활발한 교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아울러 올해 말이산고분군 유네스코 등재를 앞두고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관광객들이 함안의 아름다운 명소를 거니는 모습을 그려본다.

이태준선생 흉상

◆ 이제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할 차례

이태준 선생에게는 ‘몽골의 슈바이처’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국경을 넘어 인류애를 실천한 업적을 높게 평가한 대목이다.

다만, 기념관을 둘러보면 선생을 하나의 수식어로 한정 짓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나라와 인류를 위해 일생을 바친 청년의 희생과 헌신이 고귀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함안독립공원을 둘러보고 나가는 길. 기념관 건물 뒤편에 이태준 선생의 흉상이 있다.

흉상 옆에 나란히 서면, 멀리 이태준 선생의 생가 뒷산인 백이산자락이 보인다.

이 일대는 산들이 연이어 있고 주변에 큰 도로가 없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흉상 앞으로 한 아이가 앞서가는 부모에게 달려간다.

이태준 선생에게도 일찍 죽은 어린 딸이 있었다.

선생이 개인의 삶을 포기하고 그토록 원했던 오늘을 우리는 살고 있다.


황민성 기자  hcs@k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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