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육십삼 세, 그러니까 내가 스무 살 때 갑자기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을 마치고 나서 아버지가 계시던 방문을 열어 보니, 옷걸이에는 한 이십년도 더 된 낡고 해진 갈색윗도리 하나가 주인을 잃어 쓸쓸하게 걸려있었다.

속주머니에는 지갑이 아직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지갑을 열자 거기에는 돈 이만 원이 들어 있었다.

문득 아버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의 일이 떠올라 나는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지방에서 따로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기에 아버지는 한 몇 달에 한 번 볼까 말까였는데, 무슨 특별한 일이 없었음에도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돼지고기 이천 원 어치와 소주 한 병을 사 들고서 그날 나는 아버지에게로 갔다.

늘 그러하듯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버지는 혼자 라디오를 듣고 계셨다. 나는 돼지고기를 볶아 소주 한 병으로 술상을 마련해 아버지 앞으로 가져갔다. 전에는 한 번도 없던 일이었으므로 아버지나 나나 둘 다 계면쩍고 어리둥절한 건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그래도 내심 싫지는 않으셨는지 헛기침 한 번을 하시더니 얼굴에 살짝 화색을 띄우는 것 같았다.

‘아버지 고기 좋아하시잖아요. 많이 드세요. 그리고 술도 한 잔 따라드릴게요.’

‘험! 고기는 무슨.’

얼마 지나지 않았으나 어색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기에 하고자 하던 일을 마쳤으므로 나는 어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었고, 아버지는 그런 내 심중을 파악했는지 가보라며 손시늉을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서 나오려고 하던 나는 또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아버지에게 말을 건넸다.

‘아버지, 지갑 좀 줘 보세요.’

‘갑자기 지갑은 왜?’

옷걸이에 걸려있던 윗도리 주머니를 뒤져 내 마음대로 지갑을 꺼냈다. 지갑은 적어도 한 삼십년은 되어 보였다. 군데군데가 다 뜯어져 초라하기 그지없는 헌 지갑을 보자 울컥 눈물이 솟구쳐 오르는 듯했으나 억지로 참아가며 지갑을 열어 보았다. 지갑 안에는 천 원짜리 지폐 두 장만이 달랑 들어있었다.

환갑 넘은 노인네의 지갑에 겨우 이천 원이라니.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꼬박꼬박 모은 돈 이만 원을 모두 꺼내어 아버지 지갑에 넣어두고서 이제 간다며 아버지가 있는 방문을 닫고 집을 나와 버스에 올랐다.

돌아서 나오는 등 뒤에서 아버지의 한숨소리가 오래토록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것이 내가 아버지에게 차려드린 처음이자 마지막 술상이었고, 또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린 용돈이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드린 그 돈을 단 한 푼도 쓰지 않으신 것이었다.

당신도 그렇게 속절없이 가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셨겠지. 아끼고 아껴두었다가 언젠가는 경로당이나 회관에 가서 친구 분들에게 우리 작은 딸이 준 거라며 자랑하고 으스대려 하셨겠지.

돼지고기보다 더 맛있는 쇠고기를, 소주 대신에 비싼 술을 얼마든지 차려 드릴 수 있는데, 이십만 원도 아니 이백만 원도 얼마든지 드릴 수 있는데 더 이상 아버지는 내게 없다.

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렸네 마네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가슴이 얼마나 찢어지고 아픈지, 그리고 얼마나 부럽고 눈물나는지, 저 하늘나라 어딘가에 계시는 아버지는 과연 알 고 있을까.

낼모레면 아버지 제삿날이다.

살아서는 드시지도 못한 여러 가지 음식들을 차려 놓고, 또한 살아서는 받아보지도 써보지도 못한 돈을 하얀 봉투에 두툼하게 넣어 촛불 옆에 올려드려야겠다.

하늘나라에서나마 마음껏 원 없이 써 보실 수 있도록.
 

장미자  master@cw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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