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대리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종범입니다. 사람들이 곤히 자는 늦은 밤, 술 취한 손님을 댁까지 모시는 것이 저의 일인데요, 일의 특성상 곤란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집 앞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취한 손님이 깨어나지 않는다던가, 요금을 지불하지 않았는데 지불했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손님의 경우가 그 예라고 할 수 있지요. 뭔가 특별했던 손님은 기억에 꽤 오랫동안 남는데요. 지금부터 제가 이야기 할 이 분도 아직까지 제 기억속에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6개월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 날도 저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 가로등 불 빛만 있는 조용한 길을 혼자 걷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손님을 댁에 모셔 드린 터라 주택가에서 시내로 가려면 제법 걸어가야 했지요.

손에는 대리운전 프로그램이 켜져 있는 휴대폰을 들고 혹시나 한 건 뜨지 않을까 생각하며 뚫어져라 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딩동'하는 소리가 들렸고 확인해보니 제가 있는 곳 부근이었습니다. 기회다 싶어 얼른 그 곳으로 갔습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손님은 만취해 있었고 손님의 친구로 보이는 분이 만취한 손님을 대신해 요금을 선불로 내시더군요. 요금을 받은 후 저는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한 10분 정도 달렸을까요. 뒷자리에 기대어 신나게 코를 골던 손님이 갑자기 깨어나서는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요금드려야지요? 얼마입니까?"

녹색불을 기다리는 동안 잠에서 깬 손님은 차가 집 앞에 도착해서 정차해 있는 줄 알았는지 내리려고 몸을 추스리며 요금을 계산하겠다고 지갑을 꺼내었습니다. 저는 이미 다른분께 선불로 요금을 받았던터라 당연히 받지 않았지요.

"손님, 이미 아까 다른 분께서 계산하셨습니다. 아직 댁에 도착하려면 멀었으니까 조금 더 눈 붙이셔도 됩니다.

손님은 약간 머쓱했는지 살짝 웃으며 "아, 그래요? 그러면 도착하면 말 좀 해 주이소" 라고 말하고는 다시 코를 골며 잠에 빠졌습니다. 5분쯤 지난 후 이 손님이 또 잠에서 깨어서는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기가 오데고? 우리집은 멀었습니까?" 다시 제가 "예. 아직 멀었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손님은 또 지갑을 열면서 "요금 얼맙니까? 미리 드릴게요" 라고 말을 했습니다.

술을 많이 드셔서 기억이 나지 않나 보다 싶어 "아까 다른분께 받았습니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이 손님은 껄껄 웃으며 "이야~ 참 정직한 분이시네" 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리고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손님, 다 왔습니다" 라고 말하자 손님은 "아. 예. 요금 얼맙니까?" 라며 또 요금을 묻더군요. 솔직히 한 두번도 아니고 세번씩이나 얼마냐고 묻는 손님을 보니 요금을 한번 더 받아버릴까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더군요.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하면서 돈을 벌면 안된다 싶어 저는 이미 받았다고 다시 한 번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손님은 "히야~ 정말 보기 드물게 정직한 분이시네"라고 말 하며 꺼내들었던 돈을 제게 건냈습니다.

"이미 받았는데 왜 또 주십니까. 안주셔도 됩니다" 라고 하자 "그거는 내 친구놈이 준거고, 이거는 내가 주는겁니다"라며 끝끝내 제 손에 쥐어주시더군요. 결국 저는 그 돈을 받아 들었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더니 그 손님 또한 제게 꾸벅 인사를 하시고는 아파트에 들어갔습니다. 그런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저도 발길을 옮겼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 손님이 저에게 일부러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만약 정말로 일부러 그랬던거라면 제가 안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다면 분명 좋은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그 때 제가 그 유혹을 뿌리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직까지 우리 세상은 살 만하다는 생각을 그 손님을 통해 다시금 느꼈습니다. 요금을 한번 더 내서가 아니라, 그 만취한 상태에서도 무사히 집에 데려다줘서 고맙다는 말 한 마디가 정말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김종범  master@cw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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