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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내편이 아니면 적이 되는 세상침묵하는 다수들의 사회적 공간을 인정하라

우리나라 속담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는 이야기는 서로 비슷한 의미로 우리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말이다. 흔히 말하는 “침묵하는 다수”는 바로 이 가만히 있는 것을 통해 중간이라도 가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보다 정확히 말 하면, 자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나서기 때문에 자신은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귀찮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침묵은 금이다. 는 말도 함부로 말하여 손해 보지 말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차라리 침묵하고 있으면 품위도 있어 보이고 함부로 입을 놀려 혀를 베이는 낭패를 당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비굴하지 않는 용기 있는 침묵은 금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소통에 목마른 사회에서는 토론과 설득의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도 많다. 조직 내에서의 침묵은 단지 소통의 부재를 넘어 조직이 침몰할 수도 있다면 조직의 침묵은 독이라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조금 더 적극적인 사고로 이야기하면 행동하는 양심, 깨어 있는 시민의 고민과 행동이 바로 희망이라는 이야기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지론으로 행동과 참여를 요구했다.

그러나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토론과 설득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는 서로 갈등하며 편 가르기에 더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사색당파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편을 가르는 역사는 오랜 역사와 전통만큼이나 엄격하고 적극적이라 감히 중립지대가 불가능한 지경이다. 부처나 예수의 메시지에 ‘중립적’인 신자가 해탈하거나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 같이 내편이 아니면 적이 되는 세상에서 중립의 가치는 인정되지 않는다. 반대나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 ‘우리 편’과 ‘그들 편’ 사이에 있는 중간지대의 좋은 기능들은 이미 사라지고 말았다.

소비 행위에는 충성 고객도 있고 잠재 고객도 있다. 다른 회사에서 나온 새로운 휴대전화를 번갈아 구매하는 방황하는 고객도 있기 마련이다. 한나라당과·민주당 후보를 번갈아 찍는 유권자도 필요하다. 지나치게 한 정당에만 충성하는 충성도가 지나치면 정당은 도덕적 해이에 빠진다. 정치에 보수와 진보 사이에 중립적이고 온건한 무당파가 필요한 이유다. 나는 어느 날 절친한 이웃과 점심을 함께하면서 나온 아주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 하나를 들었다.

자신은 학연, 지연, 혈연으로 얽혀있는 좁은 지역사회에서 가능하면 중립적 입장을 고수해 왔다고 한다. 어쩌다 선거철이 되어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생기면 절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지원을 하거나 어려운 순간을 모면하면서 살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자신이 이편에도 부정적인 곱표(X)가 표시되고 저편에도 적으로 간주하는 곱표(X)로 표시되어 관리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다. 최소한 자신이 본인의 의지대로 중립적 입장인 세모(△)표로 관리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오히려 중립을 표방한 것이 화근이 되어 주변의 모두를 적으로 만든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는 후회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도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표시를 하면서 세상을 살아야 최소한 반 정도만 적으로 만드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니겠느냐는 스스로 터득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차피 중립을 인정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극적 편 가르기에 가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중립도 용납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상대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시민운동을 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많은 주변을 적으로 만들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어느 건강식품 광고에 나오는 광고멘트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린다. “남자들에게 분명히 좋기는 좋은데...뭐라고 말할 수도 없고” 분명히 내 생각이나 판단이 맞기는 맞는데 뭐라고 말할 수도 없는 답답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내편이 아니면 적이 되는 세상은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 반대를 용납하지 않는다. 지금 ‘침묵하는 다수’는 정치를 혐오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내편이 아니면 적이 되는 세상을 청산할 때다. 그리고 침묵하는 다수가 지키고 있는 중립지대의 사회적 공간을 모두가 인정하자.

이춘모  pcs052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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