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님, 비 와도 축구해요. 취재 오셔야 합니다!"

일요일 이른 아침 전화벨이 때르릉 울렸다. "기자님, 비 와도 축구해요. 취재 오셔야 합니다!" 비와 축구, 그리고 취재에 꾹꾹 감정을 실어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그렇군. 수중전인가.

이날 창원경상고 그라운드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상관없이 형형색색 선수들의 유니폼으로 분주하기만 하다. 선수들의 뜨거운 입김과 촉촉히 젖은 머리칼은 찰랑찰랑 더없이 가벼운 몸상태를 보여준다.

그들은 아찔한 슬라이딩을 해도 웃음이 나고 미끄러워 헛발질을 해도 마냥 즐거웁다. 수중전은 어른들을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마치 여드름 슈팅을 맞은 수줍은 '고딩'이나 된 듯.

경상고 동문들이 모여 축구클럽을 결성했다. 매주 일요일 오전 7시부터 그들은 '무적함대' 스페인 대표팀이 된다.

 
동문들과 함께 하는 경기, 텐즈플레이!
"'공과 선수의 관계'에서 축구는 다른 구기 종목과 다르다. 손으로 하는 종목에서 공은 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허공에 떠 있는 순간을 제외하고 그 공은 죽어 있다. 축구는 다르다. 발로는 공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공은 언제나 자유롭다"

이와 함께 독일 축구전문 작가인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이 쓴 '축구란 무엇인가'에서는 "다른 종목은 '공으로' 하는 경기지만 축구는 '공과 함께' 하는 경기다"라고 정의했다. 덧붙여 경상고축구클럽 '텐즈(Tens.회장 김경숙)'는 '동문들과 함께'라는데 명쾌한 해답을 제시할 것이다.

▲ 즉석에서 '안들려?'세리머니를 부탁하자 익살스런 표정이다.

'축구는 모두의 싸움'이라고 말하는 이상철 감독은 "아무리 훌륭한 선수가 있어도 하나로 힘을 모으지 못하면 언제든 무너지게 되어 있고,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없더라도 팀이 하나로 힘을 모으면 흔히 말하는 '끝판대장' 브라질도 이길 수 있을 것(웃음)"이라고 단언했다.

'텐즈'는 10년 전 경상고 10기들의 모임에서 시작해 현재 모든 경상인들을 아우르며 '가열찬' 텐즈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현재 회장은 김경숙 씨가 잇고 있으며, 이상철 씨, 배영환 씨가 각각 감독과 코치 역할을 맡고 있다.

이와 함께 배코치는 "축구는 여러 스포츠 중에서도 동호회 활동이 가장 활발한 종목 중 하나"라며, 공을 찰 공간만 있으면 언제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 이날 '텐즈'의 스페인 국가대표 유니폼이 돋보였던 '비쥬얼적' 이유는 훤칠한 키의 포워드 32번 때문일 것이다.

무적함대 스페인 유니폼 돋보여
이날 '텐즈'의 스페인 국가대표 유니폼이 돋보였던 '비쥬얼적' 이유는 훤칠한 키의 포워드 32번 때문일 것이다. 세계 최정상급 공격수이자 스페인 국가대표인 '페르난도 토레스(리버풀)'를 연상케 한 것. 그는 전방에서 고군분투 했지만 끝내 상대팀 골문을 열지 못했다. 그렇군. 월드컵적 토레스인가.

경상고 동문들이 모여 결성된 축구클럽 '텐즈'는 애초 10기 동문들만의 축구 모임이었다가 클럽이 활성화 되자 모든 동문들을 대상으로 참여 자격을 확장하게 되었다.

현재 40여명의 회원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일요일 오전 7시부터 정오까지 경상고 잔디구장에서 함께 그라운드를 누빈다.

▲ 경상고 동문들이 모여 축구클럽을 결성했다. 매주 일요일 오전 7시부터 그들은 '무적함대' 스페인 대표팀이 된다.

"동호회 활동을 통해 동문들간의 친목관계는 물론 적극적이고 활동적이 되다 보니 성격도 좋아지더라"고 말하는 권민철 씨. 그는 '텐즈' 총무를 맡으며 회원들의 알뜰 살림을 대신하고 있다.

또, "일주일의 묵은 때를 한 방에 해소할 수 있어 더할나위 없이 좋다"라는 등번호 32번 토레스(김선우.20) 씨. 하지만 그는 바르샤의 다비드 비야를 더 좋아한다고. 더불어 그는 "오늘처럼 동문 선배들과 함께 어울려 호흡을 맞출 수 있었던 게 큰 보람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비오는 일요일 아침. 그들의 '에스페란자(스페인어로 '희망')'는 아주 가까이 와 뒹굴었다. 초록의 잔디구장과 젖은 축구공에도, 유니폼에 밴 땀방울에도. 그중 그들의 팀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경남데일리>
 

이윤기  bynaei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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