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 휴대폰 바탕화면을 보면 한 사람이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있다. 지치지도 않고 같은 방향을 향해 계속해서 페달을 돌리고 있다.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내가 담임으로 맡고 있는 우리 반(고1)의 영수(가명)가 해준 것이다.

5월 말에 학년에서 단체로 야영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비록 1박2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학교 안에서만 생활하다가 밖으로 나가서 하루 보낸다고 하니 너나할 것 없이 좋아했다. 조별로 식사준비를 하고 당번을 정했다. 늘 그랬지만 이번에도 조원이 얼마큼 단합되느냐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랐다. 어떤 조는 풍성하게 만찬을 즐겼고, 어떤 조는 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웠다.

그래도 아이들은 젓가락 하나를 챙겨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다른 조가 준비한 밥과 반찬을 함께 먹었다. 야영의 즐거움은 바로 그런 데서 찾을 수 있다. 나는 우리 반의 텐트로 가서 살펴보았는데 몇 아이는 상추에다 고기를 싸서 직접 입에 넣어주어 나를 감동시켰다.

밤이 이슥해서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왔다. 바로 반별 장기자랑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반은 신청한 아이가 야영 직전에 다른 학교로 가는 바람에 다른 반이 하는 것을 구경만 하게 됐다. 노래를 무척 잘 부르는 아이였는데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나도 반 아이들이 앉아 있는 스탠드에 가서 춤과 노래, 그리고 간단한 악기 연주 등으로 이루어진 공연을 재미있게 보았다. 한 아이는 유럽의 요들송을 멋들어지게 불렀는데 얼마나 잘했는지 많은 박수를 받았다.

즐겁게 아이들의 장기자랑을 구경하다가 문득 내 옆에 앉은 영수를 보았다. 그는 친구와 같이 휴대폰을 갖고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우연히 바탕화면을 보니 한 예쁜 여자가 보이는 것이었다. 누구냐고 물으니 그는 빙그레 웃으며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라고 대답했다. 그러냐고, 참 얼굴이 예쁘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에 가수 아이유가 떠올랐다. 너무 닮았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그에게 아이유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그의 친구들이 웃음보를 떠뜨렸다. 그것을 보고서야 나는 진실을 알게 됐다.

영수는 미소를 지으며 그때서야 사실대로 말했다. 여자 친구 얼굴이 아니며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유를 바탕화면에 다운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를 보며 반 농담 반 진담으로 내 것도 아이유를 다운받아 달라고 했다. 주위에 있는 반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유를 아느냐고, 좋아하는 노래가 뭐냐고, 선생님이 세련됐다고 제각기 한 마디씩 말했다.

별로 말이 없으면서도 늘 미소를 머금는 영수는 내가 내민 휴대폰을 갖고 작업을 시작했다. 나도 배우면 하기야 하겠지만 아예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그가 하는 과정을 보니 정말 신기했다. 드디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휴대폰 바탕화면에도 환한 표정의 아이유가 생겨났다.

그것을 보며 몇 번이나 여닫았는데, 뒤에 앉은 재호(가명)가 역시 웃으면서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사모님 계신데 그러면 안 돼요."

깜짝 놀랐다. 큰 돌 하나가 뒤통수를 강하게 때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곁에 앉아 있는 아이들도 웃고 나도 웃었지만 그의 말 한 마디가 왜 그런지 가슴 한복판에 꽉 박혀 버렸다.

다음날 야영이 끝나고 집에 와서 아내와 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배꼽을 쥐었다. 기분 나빠한다거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냥 그대로 놔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재호의 말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었다. 사모님이 있는데 남의 여자 사진을 휴대폰 바탕화면에 올려놓으면 안 된다는 그 말이 나를 끄는 것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그것을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는 다음 날 나는 학교에 가자마자 영수를 불렀다. 사정을 알고 있는 그는 또 미소를 보이며 내 휴대폰을 갖고 이것저것 조작을 하는 것이었다. 몇 개를 보여주었는데 자전거 타는 것이 배경도 환하고 보기가 좋아서 그것으로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내 휴대폰에서 가수 아이유는 채 이틀도 지나지 않아 사라지게 됐다. 재호의 그 말 한 마디 때문에.

"선생님, 사모님 계신데 그러면 안 돼요."

유정열  master@cw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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