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들어 부쩍 햇볕이 따가워졌다. 길을 걷다보면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 때문에 시원한 나무 그늘 밑을 절로 찾게 된다. 같은 길 위라고 해도 나무그늘이 있고 없고는 천지 차이라, 나무 없는 여름은 도저히 상상하기가 어렵다.

양산 법기수원지는 80여 년간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나무들이 그득하여 수려한 자연 생태계는 물론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경남 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높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를 정도로 높고, 둘레는 장정 2, 3명이 팔 벌리고 달라붙어야 닿을까 말까 한 커다란 나무들이 굳건히 버티고 서 있다.

지난 1932년 일제강점기 시절 조성된 법기수원지는 상수원 보호를 위해 80여 년간 개방되지 않다가 2011년부터 일반인 방문이 허용됐다. 그마저도 전체면적 680만㎡ 중 2만㎡ 정도 부지만 개방된 것이란다.

오랜 시간 사람이 출입하지 않은 덕분에 측백나무와 편백, 개잎갈나무 등의 식물과 함께 지난 2004년에는 천연기념물 제327호 원앙이 70여 마리나 발견되는 등 희귀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천혜의 자연환경을 누릴 수 있다.

입구로 들어서서 왼쪽으로 꺾으면 잭과 콩나무에 나올법한 하늘로 쭉쭉 뻗은 히말라야시다 나무가 양옆으로 서서 반긴다. 높이 30m에 달하는 이 나무는 히말라야산맥이 원산지로 수령 90년의 위엄을 자랑한다.

그 옆으로는 상쾌한 피톤치드 향을 내뿜는 길다란 편백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떨어지는 빛이 예뻐 사진 찍기에도 좋다.

그곳을 지나 계단을 타고 저수지 댐마루로 올라서면 7그루의 반송을 볼 수 있다. 이 '칠형제 반송'은 법기수원지 조성 당시 이미 수령 50년을 넘긴 것들을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하니, 이미 수령이 130여 년 정도 됐다. 그 위엄만큼 자태가 우아하다. 댐마루를 걸으려면 낮고 넓게 퍼진 반송 가지 밑을 허리 숙여 지나야 하니 자연을 향한 겸손의 길이다.

댐마루 끝에서 124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취수 터널이 있고, 관광객들 몇몇은 꼭 그 앞에서 발을 쉽게 떼지 못한다. 취수 터널에 새겨진 '원정윤군생(源淨潤群生/깨끗한 물은 많은 생명을 윤택하게 한다) 글귀는 그 뜻이 아름다워서, 일제강점기 시절 이곳에 강제 동원된 선조들의 아픔과 대비된다. 글귀의 주인이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라는 것이 아이러니하여 더욱 그렇다.

아픈 역사를 고이 품고 있는 법기수원지는 그래서 아름답다. 사람 손 타지 않은 자연도 그렇고, 잊지 말아야 할 역사도 오롯이 남아 있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 관광객이라면 법기수원지에서 차로 약 3분 거리에 자리한 '성지체험농원'에서 식물심기나 허브향초·천연비누·허브 향주머니·압화·나무공예·실내 미니정원 만들기 등의 체험을 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위치: 경남 양산시 동면 법기리 345
전화: 055-383-5379
개장 시간: 4~10월 오전8시~오후 6시, 11월~3월 오전8시~오후 5시
입장료 무료/음식물 반입 및 애완견 출입 금지

김혜인 기자  hyein88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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