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부모님과 생전 처음 본 영화 '도가니'저에게 허락하신 4시간 감사합니다

   
▲ 4시간동안 버스를 기다리다 노부모님과 보게 된 영화 한편에 눈물이 핑 돌았다.

지난주 칠순이 넘으신 노부모님을 모시고 서울을 다녀 올 일이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버스를 타기위해 강남고속터미널로 향했습니다. 날씨가 좋은 가을 주말이라 호남선 대합실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습니다. 오후 3시쯤에 도착했지만 오후 7시30분 버스표가 가장 빠른 차편이라 난감했습니다.

4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심하며 부모님과 함께 각종 부대시설과 패스트푸드점을 거느린 대형쇼핑센터를 둘러보다 문득 영화관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요즘 유명한 영화인 '활'과 '도가니'를 보러 온 젊은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습니다.

영화관을 지나면서 연세가 지긋하신 부모님이 딸과 함께 영화를 보러온 모습도 보입니다. '나도 우리 부모님도 영화 보여드리면 참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니, 이렇게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영화관 데이트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엄마, 우리 영화 볼까요? 아버지는 어떠세요, 괜찮죠?"

"노인네들이 무슨 영화라냐…. 근데 뭔 재미있는 영화라도 있다냐?"

예전 같았으면 "영화는 세월 좋은 인간들이나 보는 거지, 쓸데없이 돈 낭비냐?"라며 단호하게 손사래를 치셨을 텐데, 오늘만큼은 부모님도 좋으신 모양입니다. 영화가 그렇게 보고 싶지도 않을 테지만 아들과 함께 하는 거라면 마냥 기뻐하고 즐거워하시는 분은 역시 이 세상에 부모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아들 덕에 영화 보러왔다고 이렇게 좋아하시니 눈물이 핑 돕니다.

"한국영화로 알아볼게요. 여기는 사람들이 많고 복잡하니까 다른데 가지 마시고 여기서 기다리세요. 잠깐만요~"

요즘 가장 인기 있다는 영화인 '도가니'로 영화표를 3장 끊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이 영화관에 들어가시기 전에 나를 부르시더니 슬며시 한 말씀을 하시네요.

"아, 이건 또 무슨 맛있는 냄새라냐, 우리도 저런 거 하나 먹자!"

알고 보니 주위의 젊은 연인들이 들고 있는 팝콘입니다. 영화표를 끊은 후 어느 순간부터 젊은 사람들이 하는 모든 것이 다 하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팝콘 판매대로 가서 주스 2잔과 가장 큰 대형 팝콘세트를 주문했습니다. 그것도 초콜릿이 묻어 있는 달콤한 팝콘으로…(아버지는 영화를 보시는 2시간 내내 보물단지도 아닌 팝콘 포장지를 끌어 안고 계셨습니다).

   
▲ 5년전 손자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부모님들. 그때만 해도 많이 젊으셨던 것 같다.

이윽고 영화는 시작되고, 곧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느새 영화에 몰두되어 극중 인물에 동화되어 가더군요. 영화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못된 짓을 하는 것을 보시더니 큰 소리로 "아이고, 저 나쁜 XX 봐래이... 저 못된 놈, 천벌을 받을 놈이네… 아, 어째야 쓰꺼나…"라며 안타까워 하십니다. 놀란 나는 "엄마, 여기 극장이에요. 다른 사람도 있는데 좀 살살 말하세요" "아. 그러냐? 오이야, 알것따."

그런데 잠시 후 이번엔 아버지께서 "어이구, 저 놈 좀 봐라…. 에라이 말종 같은 놈!"이라고 고함을 치시니…. 두어 번 말리다가 이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오신 아버지께서는 영화관 스피커 소리가 얼마나 큰지 귀가 다 아파 죽겠다고 말씀하시면서도 내내 웃으십니다. 어머니께서도 흐뭇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시네요. 그러고 보니, 제가 40년 이상을 살면서도 부모님을 영화관에 모시는 온 것이 이번이 처음입니다.

부모님들께서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영화 한편 보는 일은 그동안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아버지 성격상 당신이 영화를 보고 싶어서 돈을 내고 영화를 본다는 일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셨겠지요. 자신에게 들어가는 돈은 아끼고 아껴서 평생 자식들 먹고 입히는 데만 쓰셨으니까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봅니다. 당신은 혹시 최근에 노부모님을 모시고 영화를 보러 가신 적이 있나요? 가을이라 날씨도 선선하고 참 좋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부모님과 함께 영화 한편 보시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부모님 영화 보여드리려다 오히려 제가 많이 배운 하루였습니다. 터미널에 사람이 몰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허락하신 4시간,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김학용  master@cwin.kr

<저작권자 © 경남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학용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