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 박노해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
사람들 속에서 문득 내가 사라질 때
난무하는 말들 속에서 말을 잃어 갈 때
달려가도 멈춰 서도 앞이 안 보일 때
그대 혼자서 여행을 떠나라 

존재감이 사라질까 두려운가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충분한 존재감이다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
함께 가도 혼자 떠나라

그러나 돌아올 땐 둘이 손잡고 오라
낯선 길에서 기다려 온 또 다른 나를 만나
돌아올 땐 둘이서 손잡고 오라

얼마 전 수업시간에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는 시를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시를 읽어 내려 갈수록 내 머릿속은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그동안 가보고 싶었지만 친구들과 시간을 맞추느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동피랑 마을로 떠나는 것이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여행 채비를 하였고, 지난 6월 6일 통영으로 향하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공휴일 오전이었지만 고속도로는 한적한 산책길 마냥 조용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하는 일상의 나른함을 삼킨 듯 그들만의 방식으로 여름을 보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는 나의 환호소리는 점점 커져 갔다.

 그러는 동안 통영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요즘은 교통편이 좋아져서 창원에서 불과 한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려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자 팔도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떠들썩했다. 마치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서울말로 오케스트라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통영지리를 잘 모르는 나는 오케스트라를 구경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서둘러 터미널 앞에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운 좋게 동피랑으로 가는 309번 버스를 바로 탈 수 있었다. 자리에 앉은 것도 잠시, 이내 보이는 통영바다는 아침 일찍 일어난 탓에 밀려오는 피곤함과 무더위를 한 순간에 날려버릴 만큼 시원했다. 얼마 지나쯤 지났을까 “다음 정류장은 중앙시장입니다.” 라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나는 벨을 누르고 조심히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저 멀리 형형색색의 벽화로 둘러싸인 동피랑이 보였다.

 동피랑은 통영의 대표적인 어시장인 중앙시장 뒤쪽 언덕에 있는 마을로, ‘동피랑’이란 이름은 ‘동쪽 벼랑’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統制營)의 동포루(東砲樓)가 있던 자리로, 통영시가 낙후된 마을을 철거하여 동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자 2007년 10월 ‘푸른통영21’이라는 시민단체가 공공미술의 기치를 들고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공모전’을 열었고 이후에 입소문이 나면서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유명 관광지에서 보는 그 흔한 마스코트와 안내원도 없었지만 동피랑 그림 친구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안녕’ 그리고 ‘퍼뜩 오이소’는 보는 내내 웃음이 절로 나왔다. 때로는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들의 열정과 우리들의 발걸음이 동피랑을 춤추게 하고 있었다.

 골목길을 걷다보니 옥상에는 빨래들이 춤을 추고, 좁은 골목에서는 어르신들의 잦은 기침 소리만 들려왔다. 사람이 사는 동네, 보여주기만을 위해 그려진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에 발걸음도 조심스러워졌다. 누군가의 발길을 따라 가는 길은 아름답지도 ,넉넉하지도 않은 길이었지만 벽화를 통해 본 그 곳은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쉬지도 않고 걸어 다녔던 탓에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벽화가 그려진 어느 집 모퉁이에 앉아 잠깐 쉬고 있었다. 때마침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던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친 나는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심기가 불편한 얼굴이었다. 머쓱해진 나는 웃으며 “여기 참 좋네요.” 라고 다시 말하였다. 그제야 아주머니는 “좋긴 좋지.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시끄럽고, 먹다 남은 쓰레기도 아무 곳에나 버리고 그런 건 좀 신경써줬으면 좋겠다. 다른 것보다 밤에 와서 카메라 후레쉬 터뜨리는데 나이든 우리는 깜짝깜짝 놀란다.” 며 하소연을 하셨다.

 그러고 보니 그날 동피랑은 하루 종일 시끄러웠다. 심지어 지나가던 관광객중에는 텔레비전에서 볼 때와 너무 달라 실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뒤돌아서는 아주머니를 보며 고마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가 좋은 구경하고 가는 것도 동피랑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동피랑 꼭대기에서 통영 앞바다를 보며 비록 동피랑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하지만 그들에게는 언제나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이웃이 있고, 거기에다 벽화를 보러오는 많은 외부인들과 함께 삶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서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시계를 보니 오후 3시였다.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좁은 골목길에서 사람들을 피해 다니며 사진도 찍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오느라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서둘러 동피랑을 내려오면서 불현듯「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는 시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동피랑 입구에서 낯선 길에서 기다려 온 또 다른 나를 만났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이웃이었다. 아등바등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 그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눴다. 고맙고 감사한 그들이 있기에 동피랑을 떠나는 나의 발걸음이 무겁지만은 않았다. <김민서 시민기자>

김민서  jjjj23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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