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타이틀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이 전하는 정서를 함께 결합했다.

물보라 정부, 1994년의 '독고다이'
또 한 편의 '부당거래 시리즈'가 개봉했다.

전작 부당거래(2010.감독 류승완)에서 경찰 권력이 주도하는 음모 한가운데 속내를 알기 어려운 최철기 형사를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긴 황정민이 ‘독고다이(특종)’로 사생결단을 펼치는 노련한 기자 이방우로 돌아온 것. 특종이라면 칼침도 마다않고, 윤전기마저 다운시켜버리는 그의 관심은 오로지 1면 톱.

영화는 1994년 배경으로 의문의 ‘발암교’ 붕괴로 시작된다. 때는 성수대교 붕괴로 3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해이기도 하다.

언론은 간첩단의 소행이며 발암교 인근에 있던 놀이공원을 목표로 삼았으나 빗나간 것으로 추정한다며 마치 조립된 듯 신속한 보도를 낸다.

사건은 그렇게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만, 이방우 앞에 나타난 고향 후배 윤혁(진구)의 등장으로 거대 ‘물보라’가 시작된다.

영화는 ‘애너미 오브 스테이트(1998.감독 토니 스콧)’나 ‘시리아나(2005.감독 스티븐 개건)’에서 등장하는 최첨단 위성추적장치라던지 음모의 배후, 즉 모략의 주체에 관해서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다만 극적 구성의 밀도감 높은 대인방어 식 미행법과 발로 뛰는 위치 추적, 그리고 ‘내 귀에 도청장치’ 같은 나름 그 시대 첨단을 달렸던 첩보(?) 시스템으로 관객들의 예기치 못한 웃음을 선사한다.

▲ 음모론은 주인공의 무력함이 매력인 장르다.

모비딕, 어렴풋이 보이는 것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7년 1월 원자력위원회 AEC가 출범하고 그들의 내부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는 1947년 1월부터 10만명 이상의 인물에 대해 검열을 해왔는데, 약 2천명의 사람들에 대해 중대한 의문을 갖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민간인 사찰. 미국의 노골적인 민간인 사찰은 1950년 ‘매카시즘(일명 ‘빨갱이 사냥’)’으로 확대 되는데, 그해 4월 매카시 의원은 텔레비전에 출연해 “정부 내부에 공산주의자가 숨어 있다”며 “미국에서 수폭 제조가 늦어진 것도 그들 때문”이라고 발표한다.

이처럼 국내 최초 음모론 제기를 그린 영화 ‘모비딕(2011.감독 박인제)’은 실제 과거의 ‘민간인 사찰’로 사건 전개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1990년 당시 보안사 소속이었던 윤석양 이병이 군의 민간인 사찰 사건을 양심 선언했던 것. 그들이 실제로 위장 개업한 술집의 이름도 ‘모비딕’이었다고.

영화에서 등장하는 정부 위의 정부, 음모론자들의 위상은 다음과 같은 말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세상이 바라는 대로 처신하게. 그 이후의 일은 우리가 다 알아서 실행할 테니까”

현재 실정도 옛 문민정부와 다를바 없다. 여전히 민간인 사찰은 횡횡하고, 근거없는 간첩발언은 시의적절하게 반복된다. 하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것일 뿐, 거대 흰 고래의 실체는 알 수 없다.

이윤기  bynaei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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