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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과 예술, 시간이 녹아 있는 곳"[탐방] 조선시대 후기부터 명맥 이어온 마산 부림시장
사진=경남데일리

오색찬란한 빛깔의 한복과 예술가들의 창작품이 가득한 마산 부림시장은 전통과 예술, 그리고 오랜 세월을 품고 있는 장이다. 조선 후기 '마산장'에서부터 시작돼 일제강점기와 6.25사변 등 굵직한 한국사를 겪으며 수많은 이야깃거리들이 골목골목마다 녹아들어 있다.

굴곡진 역사 속에서도 명맥을 이어온 부림시장은 그만큼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장터였다. 일제강점기 해방 후 일본에서 귀화한 동포들이 부림시장에 터를 잡으며 일본 밀수품이 몰렸고, 6.25전쟁 때는 미군물자가 쏟아지며 "돈만 있으면 대포도 구한다"는 우스개소리까지 흘러 나올 정도로 흥했다.

사진=경남데일리

오늘날의 부림시장은 한복특화시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1층에 30여개의 한복집이 영업을 하고 있다. 그외에 포목점, 그릇집, 여자의류점, 신발가게, 음식점 등이 늘어서 있고 한켠에는 한지와 도예, 칠보공예 등 다양한 공방들이 들어선 창작공예촌이 조성되어 있다.

"창원은 물론이고 전국에서도 이렇게 오래된 장이 잘 없지요. 조선말부터 이어져서 일제강점기, 6.25전쟁 때도 물론이고 1970년대에는 자유수출지역, 한일합섬이 들어서면서 젊은이들로 발 디딜 틈 없었어요."

김종철 마산부림시장번영회장
(사진=경남데일리)

김종철(69) 마산부림시장번영회장은 그의 할머니부터 이어진 한복집으로 어머니, 본인, 그리고 자식까지 4대가 부림시장에서 밥 먹고, 옷 입고, 학교를 다녔다. 그처럼 몇 대가 부림시장에서 생계를 이어온 집이 수두룩하다. 1층에서 '미림주단'을 40년 째 도맡고 있는 박윤자(70) 씨도 마찬가지다.

"미림주단이 시어머니의 어머니부터 했으니 한 100년 됐을겁니다. 한 자리에서 오래 하다보니 본인이 결혼할 때 우리집에서 한복을 해입고, 세월이 흘러 자신의 자녀가 나이 들어 결혼한다고 다시 찾아 오거나 손이 귀한 집 사람이 아들 데리고 올 때면 참 흐뭇하지요."

오랜 세월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1973년도에 큰 불이 나 부림시장이 전소됐고, 그 후 78년도에 또 불이 났다. 당시에 형무소(현 삼성생명) 자리로 옮겨서 텐트를 치고 장사하는데 거기서도 또 불이 나 부림시장 사람들은 총 세번의 화재를 겪었다.

'미림주단' 박윤자 씨. (사진=경남데일리)

"그래도 그때는 시장에 손님이 많아서 크게 힘든 줄도 몰랐지요. 세번의 불도 이겨낼만큼 그만큼 잘 됐습니다. 고성, 삼천포, 함안, 진영 등 인근 지역 사람들이 다 찾아왔으니까요. 오히려 불 났을 때보다 요즘이 더 힘들지."

부흥기를 누리던 부림시장은 2000년대에 접어들며 대형쇼핑몰과 마트, 백화점이 속속 들어서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갔나 할 정도로 거리는 휑해졌고 빈 점포들만 우후죽순 늘어났다. 셔터 문이 내려진 시장 길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이에 부림시장 측은 창원시와 창원시도시재생지원센터 등 지차체, 여러 기관들과 손을 맞잡고 다시 한번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셔터가 내려진 상점들에 고예작가들을 불러모아 창작공예촌을 만들고, 쓰레기 더미로 방치된 자리에 청년들을 모아 먹거리타운 '청춘바보몰'을 만들었다.

갖은 노력으로 예전보다 활기를 되찾은 부림시장이지만 아직 옛날 전성기 때 만큼 가기에는 갈길이 멀다. 김종철 마산부림시장번영회장은 더욱 많은 시민들이 창작공예촌과 청춘바보몰을 찾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올해 말 부림광장과 공영주차장이 새로이 조성되면 프리아켓 등 여러 문화행사들을 마련하는 등 특색있는 장으로 거듭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산원도심이 다시 활성화되어 옛 영광을 찾는 것이 제 가장 큰 바람입니다. 참  어려운 시기이지만 좋은 날이 반드시 오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부림시장 상인들이 다같이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열심히 발로 뛸테니 많은 분들이 부림시장을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김혜인 기자  hyein88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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